USS 도리스 밀러함 개명 검토 — 진주만 흑인 영웅의 이름을 둘러싼 미 해군 논쟁
2026년 8월 22일 | 미국(US) | 법률 및 정부
하루 만에 미국 검색어를 뒤덮은 이름
8월 21일(현지시간) 미국 구글 트렌드 '법률 및 정부' 부문 최상단에 오른 검색어는 뜻밖에도 8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수병의 이름이었습니다. 'uss doris miller'. 24시간 동안 검색량 2만 건 이상, 상승률 600%를 기록했습니다.
발단은 8월 20일 CNN이 단독으로 전한 보도였습니다. 건조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CVN-81의 함명 'USS 도리스 밀러(USS Doris Miller)'를 해군이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붙이는 논의까지 오갔다는 내용입니다.
CNN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군이 이 배를 내부 문서와 회의에서 더 이상 '도리스 밀러'로 부르지 않고 선체번호 'CVN-81'로만 지칭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NBC뉴스와 뉴스위크 등 미국 주요 매체가 잇따라 이를 받아 쓰면서 검색량이 폭증했습니다. 다만 미 국방부는 뉴스위크의 질의에 "현시점에서 함명과 관련해 발표할 내용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즉 확정된 사실은 아직 없고, 검토 단계에 대한 보도가 나온 상황입니다.
도리스 밀러는 누구인가
▲ 해군 십자훈장을 단 도리스 밀러 수병의 공식 초상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도리스 밀러(Doris "Dorie" Miller)는 1919년 10월 12일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소작농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대공황기에 가계를 돕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요리 일을 했고, 1939년 9월 해군에 급양병(mess attendant) 3등병으로 입대했습니다.
당시 미 해군은 인종 분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흑인 병사에게 열려 있던 보직은 사실상 취사·급양 계통뿐이었고, 총기 사격은 정식 훈련 과정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940년 1월 밀러는 진주만에 정박한 전함 웨스트버지니아함(USS West Virginia, BB-48)에 배속됩니다. 함내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기도 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웨스트버지니아함의 아침
▲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에서 불타는 전함 웨스트버지니아함(BB-48) — 밀러가 승선해 있던 배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일본군의 기습이 시작됐을 때 밀러는 갑판 아래에서 세탁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뢰가 좌현에 연달아 꽂히고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그는 갑판으로 올라가 부상병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치명상을 입은 함장 머빈 베니언 대령을 옮기는 일도 도왔습니다.
그다음이 밀러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장면입니다. 그는 주인 없이 방치된 50구경 대공기관총을 스스로 장전해 일본 항공기를 향해 사격했습니다. 정식 사격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병사였습니다. 탄약이 떨어지고 퇴함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총좌를 지켰습니다.
니미츠 제독이 직접 달아준 해군 십자훈장
▲ 1942년 5월 27일 진주만에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도리스 밀러에게 해군 십자훈장을 수여하는 장면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프랭크 녹스 해군장관의 표창에 이어, 1942년 5월 27일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진주만에서 밀러에게 해군 십자훈장(Navy Cross)을 직접 수여했습니다. 흑인 미국인이 이 훈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훈장 수여는 전시 선전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밀러의 초상이 실린 해군 모병 포스터가 제작됐고, 그의 사례는 이후 수십 년간 미군 내 인종 분리 철폐를 요구하는 논거로 반복 인용됐습니다. 다만 밀러 본인은 훈장을 받은 뒤에도 급양 계통 보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미군의 인종 분리는 19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행정명령 9981호로 공식 철폐됩니다. 밀러가 전사한 지 5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943년, 리스컴베이함
밀러는 1943년 호위항공모함 리스컴베이함(USS Liscome Bay, CVE-56)에 배속됐습니다. 그해 11월 24일 길버트제도 부타리타리 환초 인근에서 일본 잠수함 I-175의 어뢰 공격을 받아 리스컴베이함이 침몰했고, 밀러는 실종·전사 처리됐습니다.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후 호위구축함 USS 밀러(DE-1091), 텍사스 웨이코의 보훈병원(Doris Miller VA Medical Center), 지부티 캠프 르모니에의 취사시설 등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항공모함 CVN-81에 붙었습니다.
CVN-81 — 이름값 못지않게 무거운 배
▲ 포드급 1번함 제럴드 R. 포드함(CVN-78)의 전면 충격시험(FSST) 장면 — CVN-81은 이 급의 4번함이다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CVN-81은 제럴드 R. 포드급(Ford-class) 항공모함의 4번함입니다. 2020년 1월 당시 토머스 모들리 해군장관 대행이 이 배의 함명을 'USS 도리스 밀러'로 발표했습니다. 미 항공모함이 사병 출신 인물의 이름을 다는 것도, 흑인 미국인의 이름을 다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통상 미 항모의 함명은 전직 대통령이나 해군 고위 인사에게 부여돼 왔기 때문입니다.
포드급은 니미츠급을 잇는 차세대 항모입니다. A1B 원자로 2기, 전자기식 항공기 사출장치(EMALS), 첨단 무기 엘리베이터(AWE), 이중대역 레이더가 특징이고, 만재배수량은 약 10만 톤 규모입니다. 승조원과 항공단을 합쳐 4,500명 안팎이 탑승합니다.
뉴포트뉴스 조선소의 시간표
▲ 2019년 10월 29일 뉴포트뉴스 조선소 건조 도크의 존 F. 케네디함(CVN-79) — CVN-81도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다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미 해군은 2019년 1월 31일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HII) 뉴포트뉴스 조선소와 CVN-80·CVN-81 두 척을 묶은 152억 달러 규모의 상세설계·건조 계약 수정을 체결했습니다. 두 척을 한꺼번에 발주해 자재를 일괄 구매하는 방식으로 단가를 낮추려는 시도였습니다. CVN-81의 조달 비용은 미 해군 2024회계연도 예산서 기준 약 129억 달러로 잡혔습니다.
인도 시점은 원래 2032년 2월이었으나, 2026년 5월 USNI 뉴스 보도에 따르면 2034년 2월로 2년 미뤄졌습니다. 3번함 엔터프라이즈(CVN-80)의 지연이 조선소 작업 공간을 잠식하면서 CVN-81 블록 제작이 밀린 것이 이유로 지목됐습니다. 용골 거치식(keel-laying)은 올해 말로 예정돼 있고, 해군이 함명 확정을 서두르는 배경으로도 이 일정이 거론됩니다.
8월 13일, EMALS를 걷어내라는 각서
▲ 2010년 12월 EMALS(전자기식 사출장치)로 처음 항공기를 발사한 시험 — F/A-18E 슈퍼호넷 (미 해군 공식 사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함명 논란 직전, CVN-81을 둘러싼 결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2026년 8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 대통령각서(NSPM)에 서명해, 포드급 후속함에서 EMALS를 증기식 캐터펄트로, 첨단 무기 엘리베이터를 유압식으로 되돌리는 계획을 60일 안에 마련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습니다.
이미 장비가 설치됐거나 건조가 상당히 진행된 포드(CVN-78)·케네디(CVN-79)·엔터프라이즈(CVN-80)는 EMALS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사실상 영향을 받는 첫 함정이 CVN-81입니다.
문제는 EMALS가 함정 설계에 처음부터 통합돼 있다는 점입니다. 전자기식 사출장치를 증기식으로 되돌리려면 증기 배관과 보일러 계통, 격실 배치까지 손봐야 하고 이는 선체 구조 변경으로 이어집니다. 전문 매체들은 신규 증기 캐터펄트를 만들어 본 곳이 20년 넘게 없다는 점, 비용과 일정이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로 짚었습니다. 반대로 EMALS의 초기 신뢰성 문제와 정비 부담을 지적하며 검증된 증기식으로 돌아가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개명이 논쟁이 되는 이유
미 해군에 함명 변경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부연합 인사의 이름을 딴 함정이 최근에도 개명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논쟁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상징성입니다. 밀러의 이름은 인종 분리 시대에 규정을 넘어 행동한 병사에 대한 뒤늦은 예우라는 맥락에서 붙었습니다. 이를 되돌리는 결정은 그 맥락 자체에 대한 판단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비판 측의 지적입니다. 웨이코 지역 언론과 참전용사 단체, 일부 의원들이 우려를 표한 것도 이 지점입니다.
둘째, 전례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미 항공모함에 붙인 전례는 없습니다. 로널드 레이건함과 조지 H. W. 부시함은 모두 퇴임 이후 명명됐습니다. 반면 함명 결정 권한은 해군장관에게 있고 역대 명명에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돼 온 것도 사실이라는 반론, 그리고 아직 확정된 바 없는 검토 단계를 두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들
· 올해 말 예정된 CVN-81 용골 거치식에서 어떤 함명이 호명되는가
· 8월 13일 각서의 60일 시한(10월 중순)에 맞춰 국방부가 내놓을 캐터펄트 전환 계획안의 내용
· 개명이 확정될 경우 '도리스 밀러'라는 이름이 다른 함정으로 승계되는지 여부
세 가지 모두 아직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확정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해군이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는 선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 English Summary
CNN reported on August 20, 2026 that the U.S. Navy is weighing a new name for the future aircraft carrier CVN-81, currently designated USS Doris Miller, with internal discussions reportedly including naming it after President Donald Trump. Sources say Navy officials now refer to the ship only by its hull number. The Pentagon said it has nothing to announce. Doris Miller, a Black mess attendant from Waco, Texas, manned an unattended anti-aircraft gun during the 1941 Pearl Harbor attack and became the first African American awarded the Navy Cross. He died in 1943. CVN-81's delivery has slipped to February 2034, and an August 13 presidential memorandum orders steam catapults in place of E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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