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 별세…92년의 삶이 남긴 것
2026년 9월 4일 | 미국(US) | 톱스토리
미국 여성운동의 상징이자 잡지 «Ms.»의 공동 창간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미국 현지 검색어 순위에서 그의 이름이 하루 만에 20만 건 넘게 조회되며 최상단에 오른 이유다. 1960년대 말부터 반세기 넘게 미국 사회의 성평등 논의를 이끌어온 인물이 남긴 궤적을, 확인된 사실 위주로 정리했다.
1. 뉴욕 자택에서 맞은 마지막
유족은 2026년 9월 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타이넘이 하루 전인 9월 2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알렸다. 그를 아끼던 이들이 곁을 지킨 가운데였다고 유족은 전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부고가 전해지자 미국 정치권과 문화계에서 추모가 쏟아졌다. 유엔은 공식 채널을 통해 그를 "마지막까지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낸 사람"으로 소개했고, «Ms.»는 홈페이지 전면을 추모 기사로 채웠다.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은 일제히 속보와 부고 특집을 편성했다. 한국 언론도 3일 저녁부터 그의 별세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2012년 촬영 · ⓒ Jewish Women's Archive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2. 톨레도에서 출발한 92년
스타이넘은 1934년 3월 25일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는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며 골동품을 파는 순회 상인이었고, 어머니 루스는 결혼 전 신문기자로 일했지만 정신질환을 앓으며 일을 놓았다. 부모가 갈라선 뒤 10대 소녀였던 스타이넘은 어머니를 돌보며 지냈다.
그는 훗날 이 시기를 자신의 문제의식이 시작된 지점으로 설명했다. 재능 있는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잃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1956년 스미스칼리지를 졸업한 뒤에는 장학 프로그램으로 인도에 건너가 약 2년을 머물렀다. 인도에서 목격한 비폭력 조직 운동의 방식은 이후 그의 활동 방법론에 오래 남았다.
3. 1963년, 플레이보이 클럽에 들어간 기자
스타이넘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린 것은 1963년 잡지 «Show»에 실린 2부작 잠입 취재기 'A Bunny's Tale'이었다. 그는 가명으로 뉴욕 플레이보이 클럽에 '버니'로 취업해 약 한 달간 일하며 내부를 기록했다.
기사가 드러낸 것은 화려한 이미지 뒤의 노동 실태였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강도 높은 근무, 몸에 맞지 않는 의상, 외모와 체중에 대한 상시 감시, 손님을 대하는 과정에서의 성적 요구, 그리고 이에 비해 턱없이 적은 실수령액이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폭로됐다. 당시로서는 드문 방식의 잠입 취재였고, 여성 노동을 다루는 저널리즘의 초기 사례로 지금도 언급된다.
다만 이 기사는 한동안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진지한 정치 기사를 쓰려 해도 '버니로 일했던 여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회고했다. 1968년 그는 시사지 «New York»의 창간에 참여해 정치 칼럼을 맡으며 저널리스트로 자리를 잡는다.
▲ 여성행동연합 기자회견에 참석한 글로리아 스타이넘 (1972년 1월 촬영 · ⓒ Warren K. Leffler, 미국 의회도서관 / Public Domain)
4. 1972년 «Ms.» 창간 — 호칭 하나가 바꾼 것
1971년 12월, «New York» 매거진 안에 시험판이 끼워져 나갔다. 이듬해인 1972년 봄,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편집권을 가진 대중 잡지 «Ms.»가 독립 창간호로 세상에 나왔다. 당시 스타이넘은 37세였다.
창간 소식에 대한 언론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예측이 특히 남성 논평가들 사이에서 많았다. 그러나 창간호는 30만 부가 8일 만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이넘 본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 시기 내내 잡지가 실패할까 봐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Ms.»라는 제호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었다. 여성을 결혼 여부에 따라 '미시즈(Mrs.)'와 '미스(Miss)'로 갈라 부르는 관행 대신, 남성의 '미스터(Mr.)'처럼 결혼 여부와 무관한 호칭을 쓰자는 제안이었다. 이 호칭은 이후 미국 공문서와 언론 표기에 실제로 자리를 잡았다. 잡지는 가정폭력, 직장 내 성차별, 재생산권, 성희롱 같은 의제를 주류 매체보다 앞서 다뤘다.
«Ms.»는 2001년 페미니스트 머조리티 재단에 인수됐고, 스타이넘은 그 뒤로도 자문 역할을 이어갔다.
▲ 연단에 선 글로리아 스타이넘 (1975년 11월 촬영 · ⓒ Jay Godwin / Public Domain)
💡 알아두기 — 자전거를 탄 물고기
스타이넘의 말로 흔히 인용되는 "남자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 같다"는 문장은 사실 호주 활동가 아이리나 던이 만든 표현이다. 스타이넘 본인이 여러 차례 원저자를 밝히며 자신의 문장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5. 잡지 밖에서 — 정치회의에서 여성행진까지
그는 편집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1년에는 베티 프리단, 벨라 앱저그, 셜리 치점 등과 함께 전미여성정치회의(NWPC)를 만들어 여성의 공직 진출을 조직적으로 밀었다. 1970~80년대에는 성평등 헌법 수정안(ERA) 비준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ERA는 끝내 필요한 주 수를 채우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조직과 인적 네트워크는 이후 미국 여성운동의 기반이 됐다.
2013년 그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미국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이다. 이 밖에 미국 프로저널리스트협회 평생공로상,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권리장전상 등을 받았다.
2017년 1월, 82세의 스타이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 날 열린 워싱턴 여성행진에 명예 공동의장이자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수십만 명이 모인 그 자리는 2세대 페미니즘의 상징이 3세대·4세대 활동가들과 같은 무대에 선 장면으로 기록됐다.
▲ 강연 중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2008년 11월 촬영 · ⓒ Mindy Kittay / Wikimedia Commons, CC BY 2.0)
6. 비판과 논쟁도 함께 걸었다
스타이넘의 92년은 찬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그가 대표한 2세대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을 기본값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오래 받아왔다. 흑인 여성, 이민자 여성, 저임금 노동 여성의 조건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스타이넘 본인은 후기 저술과 인터뷰에서 인종·계급이 교차하는 문제의식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인정했다.
2016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는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 동기를 두고 한 방송 발언이 큰 반발을 샀고, 그는 곧바로 공개 사과했다.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를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 논쟁에서도 그의 입장은 다른 진영으로부터 꾸준히 도전받았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이 그의 부고에서 공통으로 짚은 대목은, 그가 논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론가가 아니라 '조직가'로 불렀고, 강연장과 집회를 옮겨 다니는 삶을 노년까지 이어갔다.
▲ 워싱턴 여성행진에서 연설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2017년 1월 촬영 · ⓒ Voice of America / Public Domain)
7. 남긴 책, 그리고 미출간 회고록
저술가로서 그는 «터무니없는 행동과 일상의 반란»(1983), «내부로부터의 혁명»(1992), «길 위의 인생»(2015) 등을 남겼다. 특히 «길 위의 인생»은 평생을 이동하며 조직해온 자신의 삶을 정리한 책으로, 2020년 배우 줄리앤 무어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서로 다른 시기의 스타이넘을 나눠 연기한 영화 «더 글로리아스»의 원작이 됐다.
두 번째 회고록 «An Unexpected Life»는 이달 중 출간이 예정돼 있다. 결국 저자가 출간을 보지 못한 유고가 됐다.
사생활에서 그는 오랫동안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지만, 2000년 66세의 나이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업가 데이비드 베일과 결혼했다. 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다. 결혼식은 체로키 네이션의 첫 여성 추장 윌마 맹킬러가 주관했다. 데이비드 베일은 3년 뒤인 2003년 세상을 떠났다. 이번 검색어 급등 과정에서 'christian bale'이 연관 검색어로 함께 오른 배경이기도 하다.
▲ 행사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사인해 주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2016년 9월 촬영 · ⓒ Gage Skidmore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 사진 안내
본문에 실린 사진은 모두 자유 이용이 가능한 공개 자료이며, 캡션에 촬영 연도를 함께 적었습니다. 2026년 9월 부고 시점에 촬영된 사진이 아니라 생전 여러 시기의 기록 사진이므로, 사진 속 모습과 상황은 최근과 다를 수 있습니다.
📘 English Summary
Gloria Steinem, the journalist and activist who became the most recognizable face of American feminism, died on September 2, 2026, at her home in New York City. She was 92. Her family announced the news the following day. Steinem first drew national attention with her 1963 undercover report on the Playboy Club, then co-founded Ms. magazine in 1972, popularizing the honorific that gave the publication its name. She helped launch the National Women's Political Caucus in 1971, campaigned for the Equal Rights Amendment, received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in 2013, and spoke at the 2017 Women's March in Washington. A second memoir is scheduled for release later this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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