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5안타 남기고 떠난 장훈, 히로시마 원폭과 굽은 손으로 쓴 일본 야구 전설 86년
2026년 9월 11일 | 일본 | 스포츠
2026년 9월 11일 아침, 일본 구글 트렌드 스포츠 부문 검색어 1위는 '張本勲(하리모토 이사오)'였습니다. 24시간 동안 20만 회 이상 검색되며 급상승률 1,000%를 넘겼습니다. 한국 독자에게는 다른 이름이 더 익숙합니다. 장훈(張勳).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통산 3,000안타를 넘긴 타자이자, 그 기록을 한국 국적으로 세운 재일동포 2세입니다.
그가 9월 9일 오후 5시경 도쿄 시내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6세. 일본 언론이 10일 일제히 부고를 전하면서 검색량이 폭발했습니다.
▲ 도쿄돔 시구에 나선 장훈.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지팡이를 짚었다 (2024년 5월 28일 촬영 · ⓒ ウィ貴公子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다섯 살의 히로시마, 그리고 네 살의 화상
장훈은 1940년 6월 19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재일 한국인 2세였습니다. 그의 인생을 규정한 두 개의 상처가 모두 유년기에 새겨졌습니다.
첫 번째는 네 살 때 입은 화상이었습니다. 모닥불에 넘어지면서 오른손을 심하게 데었고, 엄지와 검지는 구부러진 채 굳었으며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서로 달라붙었습니다. 평생 그 손으로 배트를 잡았습니다. 일본 야구계에서 그를 두고 '안타 제조기'라 부를 때, 그 기계의 오른손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1945년 8월 6일이었습니다. 다섯 살이던 장훈은 폭심지에서 약 2.3km 떨어진 집에서 어머니, 작은누나와 함께 원자폭탄에 피폭됐습니다. 근로동원으로 시내에 나가 있던 큰누나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끝내 숨졌습니다. 장훈은 말년 인터뷰에서 누나가 의식 없이 "뜨거워, 뜨거워"를 되풀이하던 장면을 기억했습니다. 어린 그는 포도알을 으깨 누나 입가에 즙을 짜 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 히로시마 원폭 돔(原爆ドーム). 1945년 8월 6일 폭심지 인근에 있던 건물로, 장훈은 여기서 약 2.3km 떨어진 집에서 피폭됐다 (2022년 9월 촬영 · Wikimedia Commons, CC BY 4.0)
💡 피폭자(被爆者) 야구 선수
일본 프로야구에서 공식적으로 피폭 사실을 밝힌 대기록 보유자는 장훈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는 현역 시절 이 사실을 거의 말하지 않다가, 은퇴 후 해설자로 자리를 잡은 뒤에야 고향 히로시마에서 평화 관련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 첫해에 신인왕
나니와상업고교(現 오사카)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했습니다. 데뷔 첫 시즌에 곧바로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는 외국 국적 선수의 출전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장훈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도 '일본인 선수'로 뛸 수 있었던 것은 1959년 2월에 마련된, 1945년 이전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본인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협정 덕분이었습니다. 제도가 만들어진 그해에 그가 데뷔했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 도에이 플라이어스 시절의 장훈(오른쪽)과 팀 동료 다카기 기미오 (1959년 촬영 · ⓒ 博友社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3,085안타 — 아직 아무도 넘지 못한 숫자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 그가 남긴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출장 2,752경기
- 타율 0.319
- 안타 3,085개 — NPB 역대 1위, 유일한 3,000안타 달성자
- 홈런 504개 / 타점 1,676개 / 도루 319개
- 수위타자(타격왕) 7회 — NPB 역대 최다 타이
- 시즌 타율 3할 16회 — 역대 최다
- 9년 연속 3할 — 역대 최장
-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16회
이 기록이 왜 다시 나오기 어려운지는 간단한 산수로 확인됩니다. 현재 NPB 정규시즌은 팀당 143경기입니다. 3,085안타를 넘으려면 20년 동안 매 시즌 155안타 이상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쳐야 합니다. 큰 부상 없이 20년간 주전 자리를 지키면서,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계속 유지해야만 가능한 숫자입니다. 일본 프로야구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쌓는 동안 2,000안타 고지를 밟은 타자조차 손에 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3,000안타의 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야구계가 그를 '안타 제조기(安打製造機)'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홈런 타자로만 분류하기에는 정확성이 지나치게 높았고, 교타자로 부르기에는 504개의 홈런이 너무 많았습니다. 화상으로 굳어버린 오른손 손가락으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냈다는 점에서, 일본 야구계는 그를 '노력형 천재'의 표본으로 기억합니다.
NPB에서 통산 500홈런과 30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 역시 그가 유일합니다. 장타력, 정확성, 주력을 한 몸에 갖춘 타자였다는 뜻입니다. 3,085안타는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고, 현역 선수 중 근접한 사례도 없습니다.
▲ 미일 야구 경기에서 스윙하는 장훈 (1960년 촬영 · 1962년 1월 동아일보 지면 게재 · ⓒ 동아일보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요미우리를 거쳐, 롯데에서 3,000안타
1972년 통산 2,000안타를 돌파했고,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습니다. 재일 한국인 선수가 일본 최고 인기 구단의 중심 타선에 서는 일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습니다. 1980년 롯데 오리온스로 옮긴 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았고, 이듬해인 1981년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1990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 장훈이 요미우리 시절 홈으로 썼던 도쿄 고라쿠엔 구장 일대 항공사진. 오른쪽 아래가 구장, 왼쪽 위가 건설 중이던 도쿄돔 부지다 (1984년 10월 촬영 · ⓒ 일본 국토지리원 / Wikimedia Commons, CC BY 4.0)
"갓츠(喝)!" — 32년간의 일요일 아침
은퇴 후 장훈은 해설자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TBS 계열 시사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サンデーモーニング)'의 스포츠 코너 '주간 의견番(週刊御意見番)'에서, 잘한 선수에게는 "앗파레(あっぱれ, 훌륭하다)"를, 못한 선수에게는 "갓츠(喝, 호통)"를 외치는 단순명쾌한 연출로 일본 일요일 아침의 상징이 됐습니다.
거침없는 직설 화법 탓에 논란도 잦았지만, 그만큼 존재감이 컸습니다. 2021년 11월 28일 방송에서 연내 코너 졸업을 직접 발표하며 30년 넘게 이어온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한국인으로 살다, 84세에 일본인이 되다
장훈은 선수 시절 내내, 그리고 은퇴 후 40년 넘게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습니다. 귀화 권유는 수없이 받았습니다. 3,000안타를 달성하던 날 어머니가 저고리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지켜봤다는 일화, "나라를 버릴 바에는 야구를 그만두라"는 어머니의 말이 그를 붙들었다는 이야기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오래 회자됐습니다.
그러다 2024년, 84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이 산케이신문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한국 언론이 부고 기사에서 "한국인으로 살다 일본인으로 떠났다"고 쓴 배경입니다. 80년 넘게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었고, 그 선택을 두고 평가는 엇갈립니다. 다만 그가 생애 대부분을 한국 국적으로 버티며 일본 야구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 도쿄돔 요미우리-소프트뱅크 교류전 시구 행사에 나선 장훈. 알려진 마지막 공개 행사 중 하나다 (2024년 5월 28일 촬영 · ⓒ ウィ貴公子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왜 지금 일본에서 검색되고 있나
9월 10일 일본 주요 매체가 부고를 내보내면서 '張本勲'은 24시간 만에 20만 회 이상 검색됐습니다. 함께 오른 연관 검색어는 '張本勲 死因', '張本 兆治', '張本' 등으로, 사인과 가족 관계를 확인하려는 검색이 많았습니다. 같은 시간대 일본 스포츠 부문 2위는 격투기 대회 'RIZIN 속보'였는데, 검색량은 장훈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장훈'은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기록 보유자가 한국계였다는 사실, 그리고 원폭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함께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 한눈에 보는 장훈
1940년 6월 19일 히로시마 출생 → 1945년 8월 6일 피폭 → 1959년 도에이 입단·신인왕 → 1972년 2,000안타 → 1976년 요미우리 이적 → 1980년 롯데 이적, NPB 최초 3,000안타 → 1981년 은퇴(통산 3,085안타) → 1990년 명예의 전당 헌액 → 2021년 '선데이 모닝' 하차 → 2024년 일본 귀화 → 2026년 9월 9일 별세(향년 86세)
🖼️ 사진 안내
본문에 실린 사진은 모두 자유 이용이 가능한 공개 자료이며, 캡션에 촬영 연도를 함께 적었습니다. 2026년 9월 부고 시점에 촬영된 사진은 없으며, 사진 속 인물과 시설의 모습은 촬영 당시 기준입니다.
📘 English Summary
Isao Harimoto, born Chang Hoon to Korean parents in Hiroshima, died in a Tokyo hospital on September 9, 2026, at the age of 86. He remains the only player in Japanese professional baseball history to record 3,000 hits, finishing his 23-season career with 3,085 hits, a .319 average, 504 home runs and 319 stolen bases. He survived the 1945 atomic bombing at age five and played his entire career with a right hand disfigured by a childhood burn. Harimoto held South Korean citizenship for more than eight decades before naturalizing as Japanese in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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